최근 새롭게 생긴 SBS의 프로그램 중에서 가장 흥미롭게 보고 있는 방송이 있습니다. 바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입니다. 3명의 스토리텔러가 예전에 있었던 사건을 딱딱하지않고 유머러스하게 이야기하면서, 포인트는 정확히 전달해주기때문에 자연스럽게 빠져들 수 있어서 재밌더라구요.
이번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9화에서는 암호명 KT 그리고 흑색공작 편이 방영됩니다. 제목을 보면 국가의 정보기관이 개입된 사건임을 알 수 있는데요.
이번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 9화 암호명 KT 그리고 흑색공작은 바로 1972년에 있었던 김대중 대통령 납치사건에 대해서 다룬다고 합니다.
그럼 1973년에 있었던 김대중 대통령 납치사건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볼까요?
1972년은 박정희의 독재가 한참 무르익던 시절이었습니다. 독재정치를 공고히 하기 위하여 10월 유신이라는 헌법 개정을 발표한 박정희 대통령은 10월 유신을 통해 계염선포와 국회해산, 대통령 직선제 폐지 등을 통해 독재정치의 기틀을 다지게 됩니다.
당시 재야 정치인이었던 김대중 대통령은 이런 10월 유신이 선포되자 해외로 망명하여 정치활동을 계속하게 됩니다. 박정희의 10월 유신을 비난하며 한국민주회복통일촉진국민회의라는 단체를 조직하여 반정부 투쟁을 미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이어나갑니다.
김대중 납치사건은 이듬해인 1973년에 발생하게 됩니다.
바로 대한민국의 정보기관인 중앙정보부의 주도하에 일본에 있던 김대중을 납치하여, 먼 바다에 빠뜨려 죽이려 했지만, 미국정부에게 배의 위치가 발각되어 바다에 빠드려 죽이려던 계획을 포기하게 됩니다. 이로 인해서 일본에서 중앙정보부에 납치되었던 김대중 대통령은 5일뒤에 동교동 자택앞에서 발견되는 기묘한 상황까지 연출되었습니다.
<납치사건 직후 한국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김대중 납치사건은 그것이 알고싶다를 비롯해 일본에서 KT라는 영화로도 만들어졌으며, MBC의 드라마 제5공화국에서도 비중있게 다뤄졌습니다.
그렇다면, 김대중 납치사건에 대해서 한번 자세하게 알아볼까요?
망명중인 김대중 대통령은 1973년 8월8일 오후 1시 쯤 일본 도쿄의 그랜드 팰리스 호텔의 가장 높은층인 22층 2212호에서 민주통일당의 당수와 국회의원등과 함께 점심식사를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일본의 자유민주당 중의원과의 약속이 예정되어있었기 때문에, 약속장소로 만나러 가는 도중 김대중은 한국인으로 보이는 괴한 5인에게 납치가 됩니다. 범행 현장에서는 백두산이라는 담배와 배낭, 휴지, 노끈, 마취제 등의 유류품이 남아있었다고 합니다.
김대중을 납치한 괴한들은 오사카나 고베로 추정되는 안가에서 김대중의 옷을 작업복으로 모두 갈아입히고, 어디로 가는지 모르게 눈과 입을 모두 막고 차에 태워 바닷가로 이동했다고 합니다.
바닷가에서 다시 모터보트에 태워서 약 30~40분 가량을 달린 끝에 대한민국 중앙정보부의 공작석인 용금호에 김대중을 태워서 계획대로 바다에 빠드려 죽이기로 합니다.
빠뜨려 죽이기 용이하게 김대중 납치사건의 주범인 중앙정보부는 손목과 발목에 수십Kg에 달하는 바위를 매달고 등에 판자를 대어 못움직이게 몸을 묶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김대중을 살해하기 위해 준비를 하고 바다에 수장하기 직전, 갑작스런 굉음과 함께 선실에 있던 사람들이 "비행기다"라는 소리와 함께 뛰쳐나가고 이 비행기와 쫓고 쫓기기를 30분 이상 계속하였다고 합니다.
현재까지 이 비행기가 일본의 소속인지 미국의 소속 비행기인지는 모른다고 합니다.
김대중 납치사건은 당시 CIA 서울지부장이던 도널드 그레그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됩니다.
도널드 그레그는 감청요원으로 부터 김대중이 납치되었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직접 중앙정보부에 전화를 걸어 김대중을 죽이지 말라고 경고했다고 합니다. 이와 동시에 미국의 CIA는 납치된 김대중을 찾기위해 동분서주 움직였고, CIA 한국지부 요원들이 김대중의 소재를 마침내 찾아낼 수 있었다고 하네요.
김대중의 위치를 파악한 CIA 요원들이 직접 청와대로 박정희를 찾아가 김대중을 풀어주란 명령을 했다는 루머가 있는데요.
이런 일들이 있은 후 중앙정보부의 공작선인 용금호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오게 되고, 이 전화를 받고 난 후에 김대중을 납치했던 요원들의 태도가 변하여, 묶여있던 김대중의 손과발을 풀어주고 가렸던 눈도 모두 풀어주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김대중 납치사건의 최종 목표인 바다에 빠드려 죽이려던 계획은 실패로 돌아가게 되고, 김대중은 8월 11일 새벽 부산항으로 추정되는 항구에 도착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강제로 김대중을 구급차에 태우고 수면제를 먹여 잠들게 했다고 합니다.
눈을 뜬 김대중은 당시 자택이 있는 서울 동교동 근처에서 풀려나게 되며 김대중 납치사건은 129시간을 끝으로 결국 막을 내립니다.
김대중 납치사건이 국제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자 사건이 벌어졌던 일본에서는 경찰이 범인의 지문을 채취하고 증거를 수집하며, 범인들의 출두를 요구하게 됩니다. 자국의 영토에서 한국의 중앙정보부 요원들이 불법적인 공작을 벌여주권 침해에 해당됐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한국정부는 이를 거절하며 한국과 일본의 관계가 급속도로 냉각하게 됩니다.
결국 한국의 당시 김종필 국무총리가 일본을 방문하여, 일본의 총리에게 " 이번 김대중 납치사건이 발생한 것은 대단히 불행한 일로서 각하와 일본국민에 대하여 유감의 뜻을 표한다. 한국 정부는 두 번 다시 이런 사태가 발생하지않도록 노력한다." 라고 사과하며, 같은 내용의 대통령 친서를 전달하는것으로 갈등은 마무리 됩니다.
국내에서도 김대중 납치사건에 대해서 특별수사본부가 차려지는등 수사를 하였으나, 아무런 성과없이 1년후에 내사 중지되며, 다시 1년후에 내사 종결하는것으로 범인이나 배후는 못찾은채 부실수사로 끝나게 됩니다.
당시 중앙정보부장이었던 이후락이나 당시 대통령이었던 박정희 모두 이 세상 사람이 아니기때문에 사건을 계획하고 지시했던 범인은 현재 찾을 수 없는 상태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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