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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아시아나항공 여객기 733편 추락사고

달콤쌉싸름한 인테리어 2023. 7.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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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아시아나 여객기 733편 추락사고는 아시아나항공에서 일어난 최초의 인명손실 여객기사고이자, 첫번째 국내선 사고다.

 

사고일시는 1993년 7월 26일 오후 3시 40분 36초로, 오후 2시 20분 김포공항을 출발하여 오후 3시 15분 목포공항에 도착 예정이던 아시아나항공의 OZ733편 여객기가 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면 운거산에서 1차 충돌을 일으켰다.

 

 

93년 아시아나항공 733편의 탑승인원은 116명(승무원 6명, 승객 110명)이다.

사망인원은 66명(조종사 2명, 탑승객 64명)

생존인원은 44명(승무원 4명, 탑승객 40명) 이다.

 

 

 

3시 22분 38초 기장의 안내방송 : 승객 여러분, 저는 기장입니다. 현재 목포가 집중호우로 인하여 목포활주로가 지금 보이질 않고 있습니다. 현재 위치에서 약 5분정도 기다린다면 소나기가 지나갈 것 같습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1993년 아시아나항공 733편 추락 당시에 목포상공에서는 강력한 비가 내리고 있었다. 안내방송 후 오후 3시 24분 733편은 목포공항에 첫번째 착륙시도를 하지만, 실패하고 만다.

 

오후 3시 32분 두번째 착륙시도를 하지만 두번째 착륙시도도 실패로 끝나고 만다. 강하게 내리는 소나기는 그칠 줄 모르고 더욱더 심해져 최저가시거리가 최저치인 2800m보다 더 떨어져서 2600m 일 정도로 강한 소나기가 내리고 있었다. 시야확보가 안되기때문에 부조종사는 활주로를 찾았지만, 기장인 조종사가 활주로를 찾지못해 실패접근지점을 통과해 2차 착륙에 실패하고 복행하게 되었다.

 

2차 착륙 실패 후, 목포공항 관제탑은 조종사들에게 착륙 재시도 여부를 물었으며 조종사들은 다시 착륙을 시도하겠다고 응답한다.

 

 

2번에 이은 착륙실패때문에 조종사들의 마음이 조급했던지, 3번째 착륙시도에서는 착륙 준비를 약 3km 전부터 시행하게 된다.

 

당시 목포공항은 계기착륙장치처럼 비행기가 안전하게 공항으로 착륙하도록 유도하는 안전장치가 설치되어있지않은 지방의 소규모 공항이었고, 활주로도 1500m로 민항기가 착륙하기에 최소한의 아슬아슬한 길이었기 때문에 악천후와 조종사의 성급한 판단, 미비한 공항의 시설이 겹쳐서 사고가 일어났다고 볼 수 있다.

 

아시아나항공 733편 여객기는 1,2차 착륙시도 때 시행했던 고도점검을 3차 착륙시도 때는 생략하였으며, 평균하강률이 분당 500피트인데 이보다 2배 빠른 속도로 하강을 하며 3차 착륙을 시도한다.

 

현재 조종사들이 안전고도를 어기고 더 낮게 하강한 이유는 밝혀지고 있지 않다.

 

최종접근지점 앞에는 해발 324m의 운거산이 위치하고 있는데 최종접근지점을 통과하기 전에 안전고도를 213m로 설정하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고 만다.

 

아시아나 733편 여객기를 조종하는 기장과 부기장은 목포공항으로 향하던 중 자기들 눈앞에 나타난 운거산을 보고 황급히 기수를 들어올리지만 이미 때는 늦은 상태였다. 222m터까지 내려간 항공기는 상승 시도 후 약 10m 상승하였지만, 해발 324m인 운거산을 피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아시아나 733편은 운거산 고도 232m 지점에 충돌한 후 추락하게 된다.

 

 

최종접근지점 통과를 통보해야 하는 733편의 교신이 없자 목포관제탑과 광주송신소는 오후 3시 41분부터 계속 733편을 호출하지만 응답은 없었다. 이 시각에 아시아나항공의 운항관리실은 733편이 아직 착륙하지않았음을 확인하고, 관제기관과 통신이 두절되었다는 소식을 전달받았다.

 

추락 직전 아시아나항공 733편의 기장이 운거산을 발견하고 고도를 상승시키는 덕분에, 사고기는 산과 충돌 후에도 계속해서 상승각을 가지고 산의 능선을 넘어 반대 방향으로 2차 충돌을 하였다. 산림이 가장 우거진 7월에 일어난 사고이기때문에 산의 우거진 나무들이 기체에 완충작용을 하고, 당시 내렸던 소나기로 인해 산과 나무가 충분히 젖어있던 덕분에 충돌후에 스파크가 발생하지않아서 화재도 일어나지 않았다.

사고 당시 기체는 세동강이가 난채로 갈기갈기 찢겨져 있었으며, 대부분의 생존자는 비행기 뒷편에 자리잡은 사람들이었다. 733편이 추락한 장소는 사람들이 오가지 않는 산의 중턱에 위치하고 있기때문에 따로 길이 나있지 않아서 엠뷸런스는 진입할 수 없었으며, 생존자들은 해군 헬기로 병원에 옮겨졌다.

 

사망자 : 66명 (조종사 2명, 탑승객 44명)

생존자 : 44명 (승무원 4명, 탑승객 40명)

 

당시 출동한 해군의 경항공기는 들것을 놓을 자리가 없고, 구조헬기가 아니기때문에 들것도 없는 상황이어서 부상자들을 와이어에 매단채 수송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당시 척추를 다친 환자들이 2차 부상을 입어 하반신 마비가 되기도 한다.

 

이렇게 부상자들을 와이어에 매달고 수송하는 과정에서 원피스를 입은 부상자의 속옷이 노출되는걸 그대로 방송을 하고, 쇼크로 몸을 떨던 어린아이들에게 마이크를 들이대는 등 언론의 과잉취재경쟁은 많은 지탄을 받기도 했다.

 

1993년 아시아나항공 733편 추락 사고는 아시아나항공 최초의 인명손실 사고이자 최악의 인명손실사고이며, 첫번째 국내사고이다. 이후 사고조사과정을 거쳐 나온 최종 판정은 조종사의 착륙접근 조작과실로 밝혀졌다.

 

기준이하 시정상태에서 무리한 착륙접근비행을 하였으며, 착륙절차에 따른 고도 미준수가 추락사고에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던것으로 최종조사결과로 발표되었다.

 

93년 아시아나항공 733편 추락사고 이후 아시아나항공은 유가족들에게 1인당 1억7천5백만원씩 배상하였으며 부상자들에게는 완쾌시까지 치료금과 위로금을 지급하였다.

 

93년 아시나항공 사고 이후에 열악한 시설의 목포공항을 대체하기 위해서 무안국제공항이 건설되었고, 목포공항은 현재 해군의 군비행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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